2024.06.15 (토)

  • 흐림동두천 21.2℃
  • 흐림강릉 23.6℃
  • 서울 23.3℃
  • 구름조금대전 23.0℃
  • 구름많음대구 23.6℃
  • 박무울산 20.5℃
  • 구름많음광주 23.2℃
  • 구름조금부산 23.5℃
  • 구름조금고창 21.6℃
  • 구름조금제주 23.1℃
  • 흐림강화 19.4℃
  • 구름많음보은 20.4℃
  • 구름조금금산 21.2℃
  • 구름많음강진군 21.6℃
  • 구름조금경주시 20.9℃
  • 구름조금거제 21.1℃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특별기고] 은둔의 땅에서 개방의 땅으로..... '티베트'를 가다

중국 티베트 현지 르포

 

은둔의 땅에서 개방의 땅으로 변화하는 '티베트를 가다'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사람이 4000m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방은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들이고 그 너머는 만년설을 뒤집어 쓴 히말라야 산군(山群)들이 끝없이 이어진 곳, 그곳은 '영혼의 땅' 티베트다. 

 

티베트 라싸(拉萨)로 가는 길은 멀었다. 수없이 중국을 다녔지만 대개 비행 거리가 3시간 안팎이었는 데, 라싸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니 전체 비행시간만 6시간이 넘게 걸렸다.

 

 

16일 오전 청두 톈푸(天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덧 히말라야 설산 위를 날고 있었다. 저곳에도 사람이 산다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인간의 생존력에 새삼 경외심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티베트라고 부르는 시짱(西藏)자치구 방문은 중국 정부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고산병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수락했다. 한중 우호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한 지 오래인 만큼 중국 어느 곳이든 못 갈 곳은 없다는 생각이다.

 

비행기는 어느덧 라싸 외곽에 위치한 공가르 공항에 착륙했다.

 

 

영접을 나온 시짱자치구 외사판공실 천펑(陳峰) 부주임이 손님을 맞이하는 티베트 전통에 따라 하다(哈达ㆍ명사 음역어로 티베트 족·몽골족이 경의나 축하의 뜻으로 쓰는 흰색·황색·남색의 비단 수건)를 목에 걸어주었다. 사람이 귀했던 설산고원(雪山高原)의 오래된 전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준비해온 고산병 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기력이 다소 떨어진 느낌이 들 뿐 별다른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라싸 시내는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분지였다. 해발 3800m에 이르는 설산고원에 이런 분지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내의 모습은 여느 중국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소수민족 우대 정책 때문에 간판에 티베트어를 먼저 쓰는 것에 눈길이 갔다.

 

 

라싸는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고, 라싸강 남쪽에는 인구 30만명 규모의 신도시가 들어섰다. 현대식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보며 이곳에도 욕망의 도시인 강남이 있구나 라는 생각과 인간 사는 곳은 어디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포탈라궁(布达拉宫)에서 기도하던 그들과 이곳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인가?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라싸 제 8중학교를 방문했다.

 

차이양주오마 교장이 티베트 전통복장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맞이했다.

 

장(藏)족 여성인 그는 이 학교가 장족과 한족, 다른 소수민족의 청소년들이 함께 교육하는 민족융합교육의 모범이라고 했다.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티베트어와 중국어를 함께 배우고 있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티베트 전통 음악극과 서예, 장기 등을 선택해 배우는 것이 한국의 학교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2천여명에 이르는 학생 중 집이 지방인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 사이의 친밀도가 매우 높은 것 같았다.

 

참관을 마칠 무렵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티베트 전통 탈춤공연을 했다. 마치 안동 하회탈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리와 문화적 유사성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 참관을 마치고 탕카(唐卡) 학교를 방문했다. 탕카는 면화나 실크, 비단에 거대한 부처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전통적으로 틀을 짜지 않고 돌돌 말아 직물 뒷면에 그림을 부착하고 앞면에 비단 덮개를 얹는 형태로 제작된다. 티베트 불교 미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전시관에 있는 탕카 작품들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려시대 한국의 탱화 작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문성공주(文成公主) 음악극을 관람했다. 문성공주는 당나라 시기 토번(吐藩)을 통일한 송첸캄포(松贊干布, 617~650)와 결혼한 인물로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기 마련인 정략결혼 중에서도 보기드문 성공 사례이다.

 

 

고려 공민왕과 결혼한 원나라 노국대장공주의 사례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문성공주는 이 척박한 땅에 삶의 의지가 되는 불교를 전파했고, 깊은 신심으로 티베트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서기 641년 송첸캄포와 혼인할 당시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을 가면서 상당한 혼수품과 시녀들이 함께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티베트에 중국 문화를 유입시킨 계기가 되었다.

 

혼례 여정은 당 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라싸에 이르는 3000km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혼수품은 일상에 사용하는 용품 뿐만아니라 농업기술과 건축, 공예 등이 함께 전수되어 티베트 지역에 문화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많은 사찰(곰파)가 지어졌고 포탈라궁도 이때 지어진 것이다.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니 음악극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싸시 외곽에 있는 무대는 웅장했다.

 

실제 산을 배경으로 축구장 보다 큰 무대를 만들고 포탈라궁 등을 꾸몄다.

 

출연 배우만 800여명이라고 하니 가히 중국적 스케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짱자치구 정부의 배려로 귀빈석 중앙에서 관람을 했는 데, 2시간의 공연시간이 한순간에 지나갈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시집가는 문성공주의 마음과 불심, 티베트인과의 화합 등이 잘 묘사된 공연이었다.

 

17일 오전에는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을 방문했다. 이곳 지방정부가 안내해 차량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주차장까지 가서 관람했는 데도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라싸의 붉은 산 위에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진 웅장한 건물은 1400여년의 풍상을 견디며 티베트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포탈라궁의 총 건축면적은 13만㎡이다. 전체 부지는 36만㎡이며, 동서의 길이는 360m에 이르고 남북은 270m, 높이는 13층으로 117m에 달한다. 독립 국가로서의 티베트가 경제적인 능력에서는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단일 건축물을 지어올린 것이다. 불심이 아니고는 설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때문인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차이나데일리 기자가 동행해 인터뷰를 했다. 중국의 티베트 정책에 대한 서방 언론의 비판 논조에 대해 묻기에 역사와 현실을 무시한 왜곡보도라고 답했다.

 

옛부터 백성은 배부르고 안전한 것이 최고인데 수천년 티베트 역사상 지금 만큼 잘 살고 안전한 때가 과연 있었는지 연구해본다면 그런 보도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을 침략해 성을 바꾸고 한글을 못쓰게 했다. 중국 정부는 학생들에게 티베트어를 가르치고 길거리 간판에도 티베트어를 중국어 위에 쓰도록 했다. 경제적 투자가치가 없는 철도 건설과 기반시설, 학교 건설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티베트인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편견의 눈으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이날 오후에는 라싸시 소재 시짱(西藏)자치구(티베트) 정부청사를 방문해 런웨이(任維) 부주석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한중 지방정부 교류 등에 대해 대담했다.

 

간담회는 자치구 청사 제 1회의실에서 열렸으며, 구정부에서 런웨이 부주석과 류예창(劉業强) 비서장, 바이만양종(白曼央宗) 외사주임, 천펑(陳峰) 외사부주임, 장화(江華) 문화관광국장등 간부들이 참석했다.

 


온화한 모습의 런 부주석은 "시짱자치구 방문을 환영한다"며 "앞으로 한국의 불교계가 교류와 관광을 위해 시짱지역을 방문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지난 20여년간 라싸를 포함한 시짱자치구는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며 "한국인들의 불교 성지관광 등을 적극 추진해 환경과 발전이 조화를 이룬 시짱지역과 한국의 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청사내 연회장에서 천펑 외사부주임과 만찬을 함께 했다. 산둥대 출신인 그는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참된 공직자였다.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인구 364만명(티베트인이 87.8%)의 지방정부를 이끄는 간부 다운 당당함과 자신감, 그리고 겸손함이 매력적이었다.

 

 

만찬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티베트 전통 수공예 제작소를 방문했다.

 

주로 야크털과 양털로 가방 등 각종 제품들을 만들어 파는 곳인데 장인들만 300여명이라고 했다. 매우 좋은 제품이라 가방 하나를 구입했더니 도르마 총경리가 호랑이 수공예 인형을 선물했다.

 

선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일 오전 시짱자치구 제 2의 도시인 시가체(日喀则)시로 갔다. 라싸시 신도시에 있는 기차역에서 직행 기차를 탔다. 1등석 표값이 103위안(한화 약 2만원)이었다.

 

시가체 행에는 어느덧 아우가 될 정도로 친해진 천펑 부주임이 동행했다. 라싸에서 시가체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사방은 황량한 민둥산이었고, 그 너머로 설산이 보였다.

 

경제적인 논리로는 철도를 놓을 수 없는 곳인데 소수민족 우대와 접경지역 개발이라는 전략적 측면을 고려해 철도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시가체역에 내리니 시가체 정부 외사판공실 보포츠런(普布次仁) 외사주임과 츠단(次旦) 부주임 등이 마중을 나왔다. 기차가 서는 플랫폼까지 차량을 대기시키는 '중국식 예우'를 보여주었다. 시가체시에서 하나뿐인 5성급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시가체는 티베트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생각하는 초모랑마(珠穆朗瑪 Zhūmùlǎngmǎㆍ에베레스트) 자락에 있어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라싸보다 해발고도가 200여m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다. 도시 면적은 라싸 보다 크고 시내에 강이 흘러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인구 80만명 규모의 도시인데 최근 외곽지역에 공단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시가체를 상징하는 것은 타시룬포 사원이다. 티베트 불교 4대 사찰이자 현존하는 티베트 불교 최고지도자 판체라마 11세 기알첸 노르부(堅贊諾布) 스님이 주석하는 곳이다.

 

포탈라궁이 박물관이 된 곳이라면 이곳 타시룬포 사원은 살아있는 불심의 현장이다.

 

기념일이 아닌 평일에도 티베트 전역에서 5천여명이 찾아와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수행하는 스님만 880명이라고 하니 큰 사찰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스님이 되려면 부모의 동의와 본인의 의지, 스승 등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25년에 이르는 길고긴 수행과 공부의 과정을 거쳐야 정식 스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원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루상자시(洛桑扎西) 부주지 스님이 직접 안내를 했다.

 

그는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제 11대 판첸라마 기알첸 노르부 스님의 측근으로 시짱자치구 인민대표회의 대표와 민족종교외사위원회 위원, 불교협회 상무이사, 시가체시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타시룬포 사원 관리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필자와 루상자시 스님은 한국과 티베트 불교가 교류하고 협력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사원 곳곳에 있는 안내판은 티베트어와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 5개 언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과의 교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타시룬포 사원은 1447년 창건되었으며, 15만㎡의 면적에 57개의 건물과 3600칸의 방이 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각 전각들은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모습이었다.

 

이 가난하고 척박한 땅의 백성들이 불심 하나로 이룬 놀라운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고 모두 내주었던 티베트인들의 순수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티베트는 설산고원에 위치해 청보리와 야크가 주된 먹거리이다. 풀 한포기 없는 설산에 둘러싸여 있으나, 대협곡을 가로지르는 야룽창포(雅鲁藏布)강과 지류들이 있어 청보리 농사를 짓는 데, 대대로 가장 좋은 청보리를 사원에 바쳤다고 한다. 

 

 

오후에 티베트 마을을 방문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새롭게 조성된 마을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은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 중 젊은 부부가 사는 집을 방문했다. 청보리 술을 내오고 과자를 권하는 등 환대가 극진했다.

 

여주인의 여동생이 푸젠성 샤먼시에서 한족 청년과 결혼해 잘 살고 있다며 자랑삼아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제 티베트는 더이상 고립된 은둔의 땅이 아니었다. 

 

시가체시 정부가 야심차게 조성한 공단을 둘러보았다. 아직 다 차지는 않았는 데 그래도 기반시설과 구획정리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친구인 유성훈 금천구청장의 전화가 와서 즉석에서 시가체시와 금천구의 우호도시 협정을 제안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잘 성사되면 한ㆍ티베트 교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공단에서 청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했다.

 

깨끗한 제조시설을 통해 알콜 도수 1.5도에서 7.5도까지 다양한 맥주들이 생산되었다. 공장 참관을 마치고 맥주를 시음했는 데, 필자에게는 1.5도짜리 맥주가 입맛에 맞았다. 도수도 낮고 건강에 좋은 청보리로 만들었으니 음료 처럼 마셔도 좋을 듯 싶다.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니 시가체에 있는 중국인 친구들이 찾아왔다. 한명은 소수민족인 바이(白)족이고, 다른 한명은 한족이다.

 

저녁 겸 술을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고산병 가능성이 있으니 찻집으로 가자고 했다.

 

은행원인 이들은 필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1시간 거리인 바이랑(白郞)현까지 가서 지인의 과수원에서 직접 딸기와 토마토를 따왔다며 시가체의 명물인 구기자차와 함께 건넸다.

 

자연이 청정 무공해라서 그런가 사람들도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찻집을 나와 시내를 걷는 데 한 쇼핑센터에 '파리바게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지에서 한국 기업의 간판을 보니 반가웠다. 늦은 시간이라 가게가 문을 닫아 중국 친구들에게 빵을 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티베트는 히말라야 설산에 둘러싸인 은둔의 땅이었다. 과거 중국의 전략은 토번이라 불리는 이민족이 기름진 땅 중원을 넘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첸캄포왕이 당나라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을 때 이를 수락했던 것이다.

 

고대의 대외전략에서 혼인정책은 유럽과 아시아 모두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문성공주의 혼인은 평화와 문명의 사절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라싸에 이르는 먼 거리를 문성공주는 수많은 기술자와 물품을 가지고 이동했다.

 

낯선 땅에 얼굴도 모르는 이민족 남자를 찾아가는 문성공주는 함께 모시고 간 불상 앞에서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 불상은 지금 라싸에 있는 대조사(大昭寺ㆍ조캉사원)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 문성공주는 당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티베트인의 사랑을 받았다.

 

신중국 건국 이후 티베트는 중국의 일원이 되었다. 농노제가 폐지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티베트는 여전히 은둔의 땅이었다. 그런 은둔의 땅이 이제 개방의 땅이 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칭짱(靑藏)철도의 개통 덕분이었다. 지난 2006년 개통된 칭짱철도는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과 라싸를 잇는 고속철도로 총연장 1956km, 평균 해발고도 4500m를 시속 160km로 달린다. 가히 교통혁명이 아닐 수 없다.

 

칭짱고원 불모지를 달리는 고속철도는 은둔과 고립의 땅인 티베트에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였다.

 

 

사람은 몰려들고 물가는 싸졌다. 필자가 19일 저녁에 라싸 시내 상점가에서 만난 상인은 간쑤(甘肅)성 출신의 회(回)족이다. 그는 칭짱철도 개통 이후 라싸로 이주해 장사를 하고 있다. 현재 쓰촨성 청두에서 라싸를 잇는 총연장 1629km의 촨짱(川藏)철도도 건설 중이다. 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라싸는 고속철도로 동남아 국가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

 

사람이 몰려들고 물자가 풍부해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세상사 모두가 그렇듯이 변화와 발전은 변질과 오염을 수반한다. 히말라야 설산을 닮은 티베트 사람들도 기도 대신 성공과 출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티베트인이 공부하고 돈 벌어서 떠난 자리는 한족과 다른 소수민족들이 채운다. 전통문화는 잊혀지거나 변질되고 있다. 시짱자치구 정부도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밤에 호텔 밖에 나와보니 고원의 맑은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 그래서 기도가 더욱 절절한 사람들, 그들은 티베트 사람들이다. 20일 아침 라싸 시내 산책 길에서 만난 두 여인은 먼 지방에서 출발해 몇달동안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면서 대조사로 가고 있었다.

 

오체투지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의미로 이마를 포함한 오체를 바닥에 대고 절하는 것이다. 이 여인들의 이마에는 굳은살이 배기고 푸른 멍이 들었다. 이 절절한 기도는 무엇인가?

 

티베트에서의 일주일 내내 머리속을 맴도는 물음이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선한 티베트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짜시델레 (扎西德勒ㆍ당신의 행복과 행운을 빕니다).

관련기사

7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